검색결과
-
여수해수청, 여수~거문 항로 쾌속카페리 대체 투입 요구 관련-운항 개시한 지 3개월 만에 2,000톤급 쾌속카페리 여객선으로 선박 대체 투입 요구 > 접안시설 「해운법」에 따른 여수~거문 항로 사업자 공모절차를 거쳐 선정된 신규 여객선사가 지난 4월 운항을 개시한 지 3개월 만에 2,000톤급 쾌속카페리 여객선으로 선박 대체 투입을 요구하였다. 국내 쾌속카페리가 운항 중인 인천~백령 항로나 완도~제주 항로 또는 과거 운항하였던 장흥 노력항, 고흥 녹동항 등은 쾌속카페리가 접안할 수 있는 접안시설 및 적정 수심을 설치하여 확보하였으나, 여수~거문 항로의 기․종점 및 각 기항지인 여수항, 거문도항, 나로도항, 손죽도항, 초도항에는 이러한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이를 위한 대규모 예산(450억원 이상 소요) 및 시간(최대 5년)이 필요한 사항이다. 여수해수청에 따르면, 여객선은 여객의 안전과 직결된 사항인 만큼 접안시설 여건이 충분하고 안전하게 갖추어야 하며,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쾌속카페리 접안시설을 설치하였으나 쾌속카페리의 운항이 중단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기에 지속 운항을 위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여수해수청은 "2020년 여수~거문 항로 여객선 운항내역을 분석하면 운항계획 1,902회 중 970회를 운항하고, 선박정비 및 통제로 인한 결항은 932회로 약 49%의 결항률이 발생하였으나, 국내 유일하게 2,000톤급 쾌속카페리가 운항하는 인천~백령 항로도 작년 여객선 결항율이 49.7%로 2,000톤 쾌속카페리가 운항하더라도 결항률이 현재보다 급격히 낮출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하효정 기자
-
여수해경, 섬마을 고열 응급환자 긴급 이송-코로나19 의심 고열환자 음압장비 이용 후송 여수해양경찰서(서장 송민웅)는 '지난 10일 저녁 여객선이 끊긴 섬마을에서 고열을 호소하는 응급환자를 무사히 후송했다'고 11일 밝혔다. 여수해경은 10일 오후 4시 44분경 여수시 삼산면 손죽도 주민 A씨(남, 74세)가 고열(39.5도) 및 오한, 명치통증을 호소하여 응급이송이 필요하다는 손죽도 보건지소장의 요청을 접수하고 연안구조정을 급파했다. 환자가 최근 서울에 다녀온 적이 있고 발열 및 오한 등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임상증상을 보인다는 보건지소장의 의견에 따라 여수해경은 감염예방장비(음압들것)을 이용하여 환자를 이송하였으며, 같은 날 오후 8시경 녹동항에서 119에 인계해 고흥군 소재 병원으로 긴급 이송하였다. 이번에 사용된‘음압들것’은 코로나 19 장기화 대비 해양방역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난 8월 도서지역 응급환자 후송이 많은 여수해경 각 파출소에 보급되어 운용되고 있으며, 격리기능과 운반기능이 통합된 감염 또는 감염 의심환자 이송용 장비이다. 다행히 해당 응급환자는 코로나19 음성판정을 받았으며 이송에 참여한 경찰관 4명도 격리해제 되었다. 여수해경 관계자는“좁고 밀폐되어 2차 감염에 취약한 경비정 특성상 음압들것의 도입과 운용이 승조원들의 감염예방과 코로나19 확산방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고 밝혔다. 유희민기자
-
신병은의 문화예술칼럼 - 여수의 섬은 날마다 자란다-권진용, 문경섭, 박동화, 박성태, 조종현...다섯 작가의 '섬섬여수전' >신병은 시인 # 프롤로그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전문 삶은 본질에 앞서 관계다.관계는 연결과 단절의 두 가치개념을 내포하고 있어 상황에 따라 파악되는 내용이 달라지기 마련이다.그리고 ‘멀다’ 혹은 ‘가깝다’는 거리도 있다. 이때의 거리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서적 거리다. 강재윤 시인은 그의 <섬맛 기행>에서 섬은 아무리 작아도 그 자체로 하나의 왕국이라며 섬으로 가는 길은 여권 없는 해외여행이라고 했다.이렇듯 섬은 여수의 미래를 잇는 가치개념으로 자리해 왔고, 특히 요즘의 포스트코로나로 인해 섬은 삶의 내일을 예견하는 로드맵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섬은 섬일 때 가장 빛난다.섬은 그 자체로 빛나는 살아있는 ‘생’이다. 여기에서 섬만 섬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할 것 없이 흐르는 것은 다 섬이 된다. 시간도 공간도 인간도 나무도 풀도 꽃도 그 자체로 섬이 된다.섬의 확장이다.여수의 섬은 날마다 자란다.화가들의 작품속에서 자란다. 나는 너의 섬이고 싶다. >조종현작가. 시간-기억 # 섬섬여수 ‘섬섬여수’는 여수의 브랜드 네이밍이다. 여수의 365개 섬과 섬섬옥수纖纖玉手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중의적 의미의 네이밍이다. 물론 섬 하면 목포신안의 천사의 섬을 떠 올릴지 모르지만 여수만큼 섬다운 섬의 원형을 갖지 못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여수를 방문했던 오탁번 시인은 여수麗水를 ‘아름다운 女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고울 麗를 여자 女로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오래전부터 ‘섬섬여수’의 중의적 의미를 간직해 왔다고 본다. 섬은 아름답다. 여수의 섬은 더 아름답다. 거문도, 연도, 초도, 안도, 화태도, 개도, 낭도, 월호도, 금오도, 사도, 여자도, 오동도, 적금도, 추도, 상화도, 하화도, 백야도, 묘도, 달천도, 장군도, 대경도, 소경도, 손죽도, 장도, 백도, 조발도, 힛도, 평도, 대두라도, 소륵도, 문여, 대횡간도, 소횡간도, 서도. 제도, 모개도, 자봉도, 수항도, 송도, 운두도, 볼무섬, 나발도, 장사도, 두라도, 가덕도, 삼간도, 둔병도, 동도, 하백도, 외치도, 간도, 대삼부도, 소부도, 역만도, 노도, 소락도, 시루섬, 목도, 두력도, 오도, 작도, 소삼부도, 장재도, 상백도, 방끝, 소운두도, 삼섬, 서치도, 까막섬, 문도, 조도, 부도, 보찰여, 대부도, 용섬, 밤섬, 손죽열도, 모기여, 섬목도, 오란도, 가장도, 소평도, 금죽도, 동굴섬, 알마도, 단도, 서목섬, 대마도, 무구나무섬, 나무여도, 수항도, 죽도, 덜섬, 송도, 소죽도, 검등여, 살피도, 갈퀴섬, 대소여, 선바위, 머그섬, 딴섬, 매섬, 매물섬, 밭업대기,밖노루섬, 복개도, 노랑도, 야도, 미섬, 흰여, 홍도, 큰여, 형제도. 장구도, 만월도, 납작도, 넓섬, 동도, 하과도, 소두도, 혈도, 검은여, 증도, 외단도, 아랫구무섬, 애기삼섬, 작은서삼여, 대바위도, 자래섬, 납계도, 작은검은여, 풍락도, 농여, 장구섬, 배다여, 오리섬, 건너섬, 반초도, 삿대걸이, 동굴섬, 윗부리섬, 안목섬, 지마도, 초리도, 대륵도, 소문도, 치도, 나룻섬, 목도, 문서, 문여, 상계도, 꽃밭등, 보든아기섬, 부도, 야도, 밖목섬, 떨꺽여, 장거리도, 큰욧등, 검둥여, 촛대섬, 윗구무섬, 상과도, 대락도, 상섬, 노적섬, 소원도, 진대섬, 둥근섬, 중륵도, 노랑가장도, 소알마도, 내치도, 서근도, 대원도, 초삼도, 술대섬, 놀리청, 말섬, 중삼도, 중경도, 마물도, 취도, 높은날섬, 오리섬. 하계도, 외삼도, 응섬, 하증도, 간수제도, 암목도, 솔거섬, 둥글섬, 소평여도, 중앙진섬, 구멍섬, 조락섬, 안노루섬, 정개도, 각시움통섬, 동퇴섬, 노적섬, 일간도, 죽도, 풍낙도 .... 섬의 이름을 부르면 한결같이 그 섬의 정겨운 서정이 안겨온다. 섬마다 섬의 이름값이 있고 과거형의 내력이 숨어있고 진행형의 섬살이가 있다. 여수가 내세울 수 있는 지속가능한 유효가치가 있다면 그 으뜸이 훼손되지 않은 바다와 섬이다. 오래된 미래, 섬은 제 각각 하나의 세상이다.김준박사는 그의 저서 <섬살이>에서 ‘느리고 고유하게 바다의 시간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섬은 풍경이 아니라 ‘섬살이’라고 했다. 여수에는 물길 따라 열고 닫히는 365개 생일 섬도 있다.365개 생일섬 지정 사업은 정일선 회장이 여수지역발전협의회 이사장으로 있을 때 국제섬포럼과 함께 여수의 섬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추진했던 사업이기도 하다. 이는 365개 섬의 숨은 이야기와 매력을 담아 연중 찾아가고 싶은 ‘365아일랜드’의 브랜드화를 추진했던 사업이다. 이렇게 여수의 섬은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다.지난 번 여수 국제 섬박람회 최종용역보고에서 박람회 주제를 ‘섬, 바다와 미래를 잇다’로 제안했다. 어떻게 보면 2012 여수 세계박람회의 주제인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의 연장선에 있는 주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애기섬’ ‘안도 이야포’ 등 여수의 섬과 바다는 여순 항쟁, 한국동란이란 현대사 속 민간인 학살이란 아픈 기억도 간직하고 있다. 이제 여수는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섬’이다.이제 여수는 ‘섬섬 여수’다. >박성태 작가. 슬픔의 시원 섬섬 # 삶과 쉼을 잇고 잇는 원형적 추임새 포스트코로나 이후 요즘 자꾸만 인간의 가치가 왜곡되고 전도되고 있다.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소외와 고독 속에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정치도 사회도 문화도 막혀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는 보다 열린 물길로 막장드라마, 정치인 뒷담까기 등의 가난한 생각에서 벗어나 그림스캔들, 시 스캔들, 클래식 스캔들, 트롯스캔들, 문화 스캔들로 처져있는 삶을 추켜올려주는 착한 스캔들이 있으면 좋겠다.발목잡기 않기, 씹지 않기, 악플 달기 않기 등의 착한 스캔들로 기다려주고 보듬어주는 배려가 사라진 현실에 착한 추임새가 있으면 좋겠다. 처져있는 삶을 추켜올려주는 생산적인 추임새 말이다. 우리민족은 예부터 신명의 민족이다.2002년 한일월드컵의 신명을 기억하고 있다. 판소리가 그랬고, ‘대~한민국 짜잔짜잔짜’라고 외치면서 관객과 선수, 고수가 융합된 국민적 추임새는 IMF를 겪는 우리에게 엄청난 힘과 격려가 되었다.그뿐이 아니다. 육당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도 마찬가지로 ‘철썩철썩쏴’하는 파도소리를 통해 개화기 문명의 추임새를 넣어면서 새로운 문명을 선도하기도 했다. 추임새는 추어주는 추임새가 있는가하면 풀어주는 추임새도 있다.판소리도 답답한 곳 맺힌 곳을 풀어주는 대목에는 반드시 추임새가 들어간다.세상의 이치가 시작이 있고 맺히고 다시 맺힌 것을 풀면서 다시 시작하는 추임새의 순환과정이다.파도소리가 들리는 섬에 들면 답답한 것이 환하게 풀어지고 아울러 때묻은 삶의 모습도 말끔하게 씻어주는 것도 섬의 이러한 추임새의 의미체험이 밑작업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섬으로 가는 사람은 발길은 지난 삶의 흔적과 오늘의 삶을 연결시키고 화해시켜주는 통로이자 건강한 힐링을 위한 길찾기다. 공간이 생각이 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섬은 맑은 삶의 이야기에 대한 휴양처이면서 풀어주고 소통시켜주는 해갈의 공간이자 동화의 공간이 된다. 그래서 섬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과 곤충, 바람과 구름, 별과 어둠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해와 달, 바람이 만든 시간 ......물때를 기다리는 거기 섬이 있어요 .... 섬만 섬이 아니라 혼자 있는 것은 다 섬이에요 .... 파도도 섬도 서로를 품어주고 안아주며 .... 때로는 고요하게 서로를 울어줘요 .....바람이 먼저 손잡아 주고 파도가 먼저 안아주는 여수에서는 화장기 없는 바람이 불어요 ....보셔요 여수의 섬은 민낯의 얼굴이어요 섬은 건강한 삶의 추임새가 있는 내일의 건강한 휴休다. 여수의 섬은 풍경이 있는 쉼터다. >박동화 작가. NATURE 바다 # 에필로그 섬은 점點이면서 선線이다.섬은 유有이면서 무無다.섬은 공간이면서 시간이다.섬은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미래다. 다섯 명의 작가가 바다와 섬을 찾는 이유가 분명해진다.관념의 섬이 아니라, 원형의 섬을 찾아 나선다.언어 이전의 섬을 찾고, 공간의 섬보다는 시간의 섬을 담으려한다,오랜 시간이 머무는, 치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신유배지로서의 섬, 원형적 상상력이 살아 있는 시간을 담으려 하는 통섭의 섬이다. 오랜 세월 묵묵히 그 자리에 부유하는 생으로서의 섬을 포착하고 원래적 숨소리를 담으려 한다. 그래서 지금 직면하고 있는 풀리지 않고 답답한 앞길을 예견해주는 섬살이가 담겨 있다. 섬으로 가는 그들의 발길은 일상이면서 새로운 세계를 표방하는 기호학으로서의 섬 체험,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선 주체로서의 늘 열려있는 소통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섬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열려있는 섬’ ‘삶의 추임새로서의 섬’이라는 의미체험을 확인할 수 있다.그렇다고 그들이 만난 여수의 섬은 회화적 의미체험만으로 만날 수 있는 섬이 아니다. 그림과 시와 음악과 춤, 그리고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으로 만날 수 있는 섬이다. 그래서 다섯 명의 작가가 만난 하늘과 바다와 섬은 공간이면서 시간이고, 인간의 원형적 고독과 외로움, 슬픔의 시원으로서의 섬이 된다. 그리고 기억의 변용이다. >권진용 작가. 금오도 그리하여 섬의 주인공은 그 섬에 사는 섬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화폭과 앵글로 옮겨놓은 작가들도 아니다. 지금 작품을 보고 있는 감상자다. 그것은 오로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 기억의 상상력으로 삶의 지평을 안내해주는 이것이 예술의 힘이기 때문이다.이번에 참여한 다섯 작가가 믿는 안목이기도 하다. 여수의 섬은 그들의 작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
‘주민 동의 없이 추진하는 사업?’ 여수 해상풍력발전 주민 반발-초도 대동리 주민 50명, 27일 시청서 결사반대 시위-‘공무원들의 주민 무시와 특정 업체 유착이 도를 넘었다’-케이알피앤이, 여수 삼산해상풍력 사업에 10억원 지분출자 케이알피앤이는 지난 6월30일 공시를 통해 여수 삼산풍력발전 프로젝트에 10억원 규모의 지분 출자 계획을 밝혔다. 칠산해상풍력발전 프로젝트 투자에 나서고 이번에 영덕 강구풍력발전과 여수 삼산해상풍력발전에 연이어 지분 출자를 하면서 본격적인 육해상풍력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여수 삼산면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 과정에서 주민 50여명이 반발하고 나서며 27일 오후 여수시청을 찾아 기자회견을 하면서 해상풍력사업을 반대하고 나섰다. 여수 삼산면 초도 대동리 주민들은 “주민동의 없는 해상풍력발전 건립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주민들은 “여수시가 주민동의를 받아 해상 풍력계측기 허가를 신청한 업체는 허가를 내주지 않고, 공무원과 유착된 업체만 주민동의 없이 계측기 허가를 내줬다. 공무원들의 주민 무시와 특정 업체 유착이 도를 넘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특정 업체와 결탁한 공무원들을 징계하고, 해당 지역 주민총회 동의를 받은 업체만 풍력계측기를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며 “주민도 모르게 내준 풍력계측기 허가를 취소하라”고 반발하고 나선 주민들은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누구와 어떻게 할지 해당 지역 주민들이 주민총회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에 따르면 여수 삼산면 초도와 손죽도, 역만도, 평도, 광도, 무학도 일원 공유수면에 8메가 와트급의 대규모 해상풍력발전 건립이 추진 중이다. 다도오션윈드팜, 여수삼산해상풍력, 초도해상풍력, 광평해상풍력 등 4개 투자자가 참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는 민간자본 5조 원 가량이 투입될 전망이다. 투자자가 발전사업 허가를 받기 위한 허가 조건 중 하나인 주민수용성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 갈등이 벌어지고 있고 일부 투자자가 사업 지지자들을 동원해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주민들에게 풍향계측기를 지진 탐지봉이라 속이고 계측기를 설치해 문제가 되고 있다.주민설명회에 과정에서 사업 보상금이 각 마을마다 지급될 것처럼 설명자료를 꾸며 주민들을 속이고 동의를 구했다는 후문도 있고 여수시 퇴직 공무원이 사내이사로 재직하면서 각종 인허가 등 행정절차를 도맡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특혜시비도 일고 있다. 여수시의회 송하진 의원은 지난 15일 열린 제203회 임시회 10분 자유발언에서 “신재생에너지를 명분으로 해상풍력발전 단지 조성을 위해 난개발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며 “주민 의견 속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섬의 주체인 그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여수시 관계자는 "여러 사업자가 해상 풍력 사업에 참여하면서 주민과 일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공무원이 유착됐다는 주장은 사실 확인이 안 돼 파악해보겠다"고 밝혔다. 여수 삼산면 주민들은 “권오봉 시장은 주민도 모르게 내준 풍력계측기 허가 부분을 다시 명확하게 진상파악 하고 공무원과 유착된 업체 파악을 하여 주민들의 의혹을 풀어주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최향란기자. 사진 김영주기자
-
여수 섬 탐방 - 남녘 어부들이 개척한 뱃길의 역사남녘 어부들이 개척한 뱃길의 역사 임병식수필가 에헤야 술비야/어기영차 뱃길이야 울고 간다 울릉도야/알고 간다 아랫녘아 (중략 ) 돛을 달고 노니다가/울릉도로 향해 가면고향 생각 간절하다 울릉도를 가서 보면/에헤야 술비야좋은 나무 탐진 미역/구석구석 가득 찼네(이하생략). 이 노래는 오래토록 거문도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노동요(勞動謠) 술비소리다. 힘차면서 역동적인 소리다. 이 소리는 어부들이 협동하여 어로작업을 하면서 불렀던 노랫소리다.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많이 시들해 졌지만 이 노래는 지금도 축제 현장에서 재현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노래는 그물을 손질하거나, 고기를 잡아 올릴 때, 노를 지으면서 불러진 노래지만 가사를 음미하노라면 이 지역 뱃사람들의 애환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예전에 멀리 울릉도와 독도까지 나아가 뱃길을 열고 어장을 개척했던 것이다. 그래서 진취적인 기상이 가득하다. 이 노랫말에 담긴 내용처럼 일찍이 거문도와 초도 사람들은 눈길을 멀리 돌렸다. 남녘 바다에만 한정해 살지 않고 멀리까지 나아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개척한 어장이 울릉도와 독도어장이었다. 그곳에서 고기도 잡고 좋은 목재를 구하여 실어 왔던 것이다. 동력선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그 먼 곳까지 진출했을까. 생각만 해도 놀랍기만 하다. 그때는 풍선배로 돛을 달고 노를 저어가던 때가 아닌가. 오직 근력으로서 도전정신을 발휘하지 않으면 아니 되던 때다. 그런 상황에서 망망대해를 누빈 것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풍향을 잘 읽고 항해술이 뛰어났던 것일까. 당시의 놀라운 항해술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거문도 초도 사람들은 옛날부터 항해술이 뛰어났다. 바다의 조류를 읽고 풍향을 예측했다. 그것은 지리적으로 손죽도와 거문도 사이의 바다가 워낙 거칠어 그 풍랑을 이겨내자면 생존전략을 터득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결국은 대단한 노하우가 된 것이다. 그런 단련이 자연스레 독자적인 항해술로 발전하고 진취성을 키우게 되었던 것이다. 일찍이 울릉도와 독도를 드나든 물증은 지금도 초도마을에 남아있다. 1880경 지어진 어느 고가의 마룻장은 여느 나무와는 달리 두터운 판목으로 짜여져 있는 것이다. 인근에는 그만한 목재가 나는 곳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어디서 실어왔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울릉도에서 가져온 목재인 것이다. 또 다른 증거로는 독도(獨島)라고 불리는 지명을 들 수 있다. 전라도에서는 보통 돌덩이를 보고 ‘독’이라고 하는데 독도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바로 ‘돌섬’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은 홀로 독(獨)자를 쓰지만 이 섬이 돌덩어리 섬인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아무튼, 먼 뱃길을 개척한 역사는 흥미롭기만 하다. 그 먼 곳까지 가는 데는 많은 것들을 고려했을 것이다. 겨울철은 샛바람이나 높새바람이 불어오므로 바람을 맞서게 되는 그 시기는 철저히 피하고, 하늬바람이나 마파람이 부는 봄철에 떠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항해 코스도 지금 많이 이용하는 손죽도와 소리도를 거쳐, 욕지도와 부산의 절영도를 통해서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울릉도와 독도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더욱 해산물이 풍부했을 것이다. 특히 울릉도는 수목도 울창하여 질 좋은 목재도 마음껏 가져올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고기잡이뿐 아니라 나무를 실어오는데도 힘을 써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때 향나무도 함께 베어왔는데 이것은 제수로 귀한 대접을 받아 몇 배 이문을 남겼다고 한다. 문헌에 보면 조선은 수 세기 동안 섬을 비워 두는 공도(空島)정책을 폈다. 태종 시대 이래로 왜구의 침탈을 막고 군역을 피하거나 죄를 짓고 숨어드는 자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 어간을 이용하여 거문도 어부들이 이 어장을 개척한 것이다. 그 어간에 일본은 노략질을 그치지 않았다. 자국에서 인기가 있던 강치(바다사자)를 모조리 남획해 갔다. 당시 일본에서 강치는 대단한 인기 품목이어서 가격이 무척 비쌌다. 강치 한 마리 값이 무려 소 열 마리 값에 이르렀다. 소가 15엔일 때 강치는 무려 200엔을 호가했다. 그 바람에 잡아간 강치의 숫자가 자그마치 일만 사천여 마리나 되었다. 자료에 나와 있는 숫자이다이처럼 매력적인 어장이었는데 어찌 욕심을 내지 않겠는가. 마침 그들은 기회를 잡았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동해를 장악하고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일련의 행위가 1905년 독도를 시마네 현에 편입시키고 다께시마라 명명하여 영유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하나 이것은 명백한 침범이다. 그들이 둘러대기를 조선의 공도(空島)정책도 스스로 자국 땅이 아님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이는 어처구니없는 괴변이다. 술비소리가 어장을 개척하고 관리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어부들이 꾸준히 지켜온 터전임을 노래가사는 여실히 담아 두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볼 때 거문도와 초도 어부들이 개척한 바다의 역사는 의미가 남다르지 않는가 한다. 돌이켜보면 거문도는 특이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구 한 말, 러시아가 남하정책을 펴며 해양을 지배하려 들자 영국은 지체없이 동양 함대를 이 섬에 출동시켰던 것이다. 그 후로 일제 강점기에는 그들의 어업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섬에는 자랑스런 개척의 역사가 간직되어 있다. 이런 자료 하나하나를 잘 갈무리한다면 그들이 억지를 부리는 독도문제도 반박의 논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면면히 이어온 노동요와 당시 독도와 울릉도에서 가져온 것들이 역사의 사료가 될 것임으로.
-
‘2019 국제 섬 포럼 in Yeosu’ 25일 개막…‘섬 박람회 기틀 마련’-섬 전문가, 전국 섬 단체 회원과 주민 등 내외국인 200여 명 참여-27일까지 기조강연, 세션 강연,토론, 금오도 인문학 여행 등 진행 여수시(시장 권오봉)가 2026여수세계섬박람회 기틀 마련을 위해 ‘2019 국제 섬 포럼 in Yeosu’를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포럼은 ‘섬 박람회, 섬과 음식으로 출발하다’라는 주제로 이달 25일부터 27일까지 경도리조트와 금오도 일원에서 열린다. 섬 전문가, 전국 섬 단체 회원과 주민, MICE 관계자 등 내외국인 200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2019 국제 섬 포럼은 기조강연, 세션 강연 등의 공식회의와 금오도 인문학 여행으로 이뤄져 있다. 행사 첫날 국제슬로피시협회 Paula Barbeito 코디네이터는 ‘섬의 가치’를 주제로 행사의 막을 올린다. 이어 세션 Ⅰ ‘동아시아 섬의 맛’이 진행된다. 한국슬로피시운동본부 김준 위원장과 중국 출신 Chen Mingzhi, 국제슬로푸드 류큐협회 Yamada saki 사무국장이 강연에 나선다.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는 경도리조트 야외무대에서 여수시장, 전라남도행정부지사, 포럼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식이 열린다. 둘째 날은 세션 Ⅱ ‘섬의 맛과 멋, 그리고 삶’, 세션 Ⅲ ‘섬섬여수, MICE로 잇다’가 연이어 진행된다.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 손죽도 김영란 씨, 금오도체험휴양마을 박재성 운영위원장, 플레이스랩 정순영 대표, (재)전남생물산업진흥원 해양바이오연구센터 임영태 센터장이 강연을 한다. 특히, 2026여수세계섬박람회 기본계획 용역을 지휘하는 정순영 대표가 참석자에게 섬 박람회 개최 의의와 기대 등을 설명할 계획이다. 같은 날 오후에는 참가자들이 금오도로 ‘섬 인문학 여행’을 떠난다. 참가자들은 1박 2일 동안 비렁길 체험과 섬 음식 만들기, 동백 방향제 제작 등을 경험한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국제 섬 포럼을 열게 됐다”며 “올해 포럼이 여수세계섬박람회 분위기 조성과 섬 음식 관련 MICE산업 발굴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영선기자
-
전남도, 2020년 ‘가고 싶은 섬’ 가꾸기 공모-섬당 지원 사업비 50억 원으로 확대…23일 사업설명회- 전라남도는 ‘가고 싶은 섬’ 2020년 사업 대상지를 9월 23일까지 공모한다고 밝혔다. 공모를 위해 오는 23일 전남중소기업진흥원에서 관심 있는 시군의 공무원과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갖는다. 신청서는 9월 16일부터 1주일간 접수한다. 10월까지 서류평가와 현장평가, 정책평가 등을 실시해 10월 최종 2개 섬을 선정할 예정이다.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면 매년 10억 원씩 5년간 50억 원이 지원된다. 이는 2019년까지 8억 원씩 5년간 40억 원의 사업비가 지원됐던 것에 비해 확대된 규모다. 또한 시군, 섬 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인구수 30인 미만 섬 및 읍면 소재지 섬에 대한 응모 제한을 폐지했다.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사업은 첫 해인 2015년 여수 낭도를 비롯해 고흥 연홍도, 강진 가우도, 완도 소안도, 진도 관매도, 신안 반월박지도, 6개 섬을 시작으로 매년 2개 섬을 추가 선정해 추진해왔다. 현재는 14개 섬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2024년까지 24개 섬을 선정해 육성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까지 문을 연 8개 섬의 경우 마을식당, 카페, 게스트하우스, 특산물 판매 등으로 3년간 14억 7천만 원의 마을 공동 소득을 창출했다. 가고 싶은 섬 사업 시행 이후 45가구 59명이 귀어했으며, 2014년 27만 명이었던 섬 관광객은 3배 이상 늘어 지난해 91만 2천 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2017년 선정된 여수 손죽도와 신안 기점소악도가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환경 조성 및 기반시설 정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상심 전라남도 섬해양정책과장은 “제1회 섬의 날을 통해 섬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며 “주민이 주도하는 지속가능한 섬이 되도록 매력적인 섬을 발굴해 가꿔나가겠다”고 말했다. 최향란기자 최향란기자
-
손죽도(巽竹島) 생각-손죽도 앞바다 지키다가 손가락 끊어서 옷에 절명시를 쓴 소년장수 이대원-국가방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하는 아픈 역사의 현장 >임병식 수필가 손죽도(巽竹島)는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는 섬이다. 손괘손(巽)자는 신에게 제사지내는 형상을 형상화한 글자인데 바람을 의미하며 유순하다, 사양하다, 공손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가 대나무(竹)자가 들어있으니, 역설적으로 바람이 잔잔하기를 염원하여 지어진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로부터 이 섬은 평온하거나 잔잔하지 않았다. 역사의 굽이굽이에 아픔이 새겨진 섬이다. 손죽도를 생각하면 우선 역사적인 한 인물의 발자취가 떠오른다. 바로 소년장수 이대원 장군이다.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 이곳 손죽도 앞바다를 지키다가 전사를 했다. 젋디 젊은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였다. 알려진 바로 그의 전사는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심암과 관계가 깊다. 그가 아군 백여명을 이끌고 나아가 싸워 적장을 생포할 때 전라좌수사는 꽁무니만 빼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과를 가로채려 하자 장군은 단호히 거절했다. 적은 다시 칩입해 왔다. 이때는 중과부적이어서 좌수사에게 긴급히 지원을 요쳥 했으나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전일의 일로 사감을 앞세운 때문이었다. 이것을 안 조정에서는 장군을 후임 좌수사에 임명코자 했으니 그때는 이미 돌아가신 때였다.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손죽도는 여수와 거문도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섬은 비록 작지만 한 가운데는 대촌을 이룬 가옥이 빼곡하고 여기서 사는 주민들은 평화롭게 반농 반어업에 종사하고 산다. 이 섬은 여수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첫 번째로 닿는 기항지면서 면소재지가 있는 거문도에서 볼 때는 한 면의 끄트머리에 해당한다. 가까이로는 소거문도와 평도, 광도가 있다. 나는 직장생활 초기에 이 섬을 담당했다. 전경대 순환근무를 마치고 첫번째 부임하여 담당한 곳이었다. 당시 나는 업무를 보려고 이 섬을 오가며 어렴풋이 이 섬이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장수의 묘가 있다고 들었고 그가 왜적과 싸우다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정년퇴임을 하고나서 고장에 거주하고 살면서 주변의 역사 유물을 찾아보다가 이대원 장군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 되었다. 기록에 보면 장군은 18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21세에 녹도만호에 제수된 것으로 나온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여수시 삼산명이지만 옛날에는 흥양군(지금의 고흥군)에 속했다. 장군은 선조 때인 1587년 2월 10일 정해왜변이 일어나자 출동했다. 단번에 왜선 20여척를 물리치고 승리했다. 그런데 왜적은 패전 일주일 후 또다시 재침입을 해 왔다. 이때 장군은 숫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붙잡혀서 죽임을 당했다. 그 주검은 처참했다. 왜적은 장군을 효수하여 깃대에다 내걸었던 것이다. 죽음 직전에 쓴 장군의 시가 한편 전해온다. 日暮轅門 渡海來 (일모원문 도해래)兵孤勢乏 此生哀 (병고세핍 차생애)君親思義 俱無報 (군친사의 구무보)恨入愁雲結不開 (한입수운 결부개) 해저무는 진중에 왜군이 바다를 건너와 군사는 외로운 힘이 없어 죽으니 슬프도다임금님과 부모님께 충효를 보답하지 못하니 한스러움과 먹구름이 얽혀 끝내 풀길이 없네. 바로 직전의 상황이다. 충무공 기록이 전하는 '진중일기'에 보면 이대원 장군은 왜구가 침입하자 출전했다. 두 번째 출전은 심수사가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는 가운데 외롭게 나아갔다. 사실상 사지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군은 이때 죽음을 예감했는지 손가락을 끊어서 옷에 절명시를 써서 하인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오늘날 알려지고 있는 절명시다. 이 섬의 초기 지명은 장군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손대도(損大島)라 했는데 이것은 대장을 잃은 섬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나중에 순죽도로 바뀐 것이라 한다. 그 이후 윗선에 있던 사람으로 전라좌수사 심암뿐 아니라 전주부윤 남언경은 지원을 요청받고도 눈감아 버렸다고 한다.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한데 이 손죽도사건을 더듬어 보면서 강한 회의가 드는 것이 있다. 바로 이대원 장군이 전사한 후, 1590년에는 일본 풍신수길이 열도를 통일하고 전쟁기운이 감돌던 때인데 왜 그토록 방비를 소홀히 하고 지냈느냐는 하는 것이다. 더구나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의 의견이 각각 다르긴 했으나 나라의 안위를 지키는 일에는 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도대체 당파가 나라 보존하는 일보다 급하고 소중했을까. 손죽도 사건을 떠올리면 그 후로 이어진 조선의 역사가 영.정조 시대를 빼고는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었음을 생각하면 임금의 무능과 위정자들의 안일무사가 얼마나 비극을 낳게 하는지를 엿보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손죽도는 내 한 개인의 추억이 어린 곳이면서 한편으로는 국가방위를 챙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뼈저리게 하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가만히 날개를 펴듯 대해에 떠있는 섬을 생각해 본다. 면적 3.10 평방키로미터에 세대수 150. 그리고 인구 747명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섬(1980기준). 손죽도는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섬이다.
-
<우리지역 탐방> - 거문도 회상-나를 그립게 만드는 섬 임병식 수필가 나는 거문도를 생각하면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대가 ?옆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는 말. 이 말을 생각하면 얼마나 그리움이 사무치는 것인가. 거문도는 정말이지 나를 그립게 만드는 섬이 아닌가 한다. 아름다운 풍광 못지않게 늘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환희와 절망이 함께 뒤엉켜 혼재 하는 인상 때문일까. 거문도는 육지로 부터 무려 134.7km나 떨어져 있는 섬이다. 형상은 세 개의 섬이 마치 소쿠리 형태로 어깨동무를 하듯이 감싸고 있다. 그런지라 제아무리 풍파가 거세도 끄떡없는 천혜의 포구를 자랑한다. 이 섬은 조업하는 선박들의 대피장소이면서 선원들의 휴식처이다. 풍랑주의보나 태풍경보가 내리면 국내 선박뿐 아니라 인근을 지나는 타국적의 배들이 예외 없이 몰려든다. 섬의 모양은 본도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섬이 무려 33개나 아우러져 있다. 그런 만큼 바다에 떠있는 진주와도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통상 섬은 한자로 도서(島嶼)로 표기한다. 도(島)도 섬도자이고, 서(嶼)도 섬서자이니 각각 따로 부를 법도 하지만 외자로 떼어서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옛 문헌에 보면 ‘도’와 ‘서’는 엄연히 다르게 나와 있다. 즉, 도(島)는 해중유릉가거(海中有陵可居)라 하여 사람이 사는 것을 일컫고, 서(嶼)는 재수위(在水爲) 혹은 (재릉위(在陵爲)라고 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이른다. 아무튼 이 외딴 섬 거문도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세게 열강의 입김에 시달려왔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근대에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맞서 영국군이 진주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거문도는 그 지명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이름이 붙여진 것은 19세기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이 섬에 와서 학문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음을 보고 ‘문장가가 많다’는 뜻으로 <巨文>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섬은 또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영국군은 23개월여를 주둔하면서 포트 헤밀턴( PORT HANILTON) 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 흔적을 남겼다. 이때 죽은 병사를 이곳에 묻고 묘비를 세웠다. 이 섬에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설치된 유물이 하나 더 남아 있다. 뭐냐하면 서도 수월산에 있는 등대로 1905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 등대는 우리나라 등대역사로 볼 때 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두 번 째로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세운 목적은 일제가 배를 이용해 수탈할 목적으로 방향잡이용으로 세운 것이다. 이렇듯 거문도는 우리의 영토이면서도 늘 외떨어져 있어 외세에 시달려온 아픈 역사를 간직한 것이다. 나는 1971년 발령을 받아 이 섬에 부임했다. 그런데 부임하고 보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구사하는 사투리는 물론 생활의 패턴이 내가 자란 곳과 많이 달랐다. 밀물과 썰물, 조금과 시라, 여객선 입항과 출항에 따라 모든 생활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의 행동은 일사불란하기만 했다.한데도,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마주친 풍광이 아름다워서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꺼풀 속살을 비집고 들어가면 침략의 흔적이 오롯이 나타났다. 다음은 그런 느낌을 받고 써본 자작시이다. 거문도에 가면 외세가 훓고간 바람이 분다.1905년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등대,누가 불러들이지도 않았는데도 군인들이 몰려와 숨져간 흔적이 남아 있다그리고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백도는 지금도 그 상처에 자지러져 아파 한다 하지만 나중의 이런 마음과는 달리 처음 대해본 거문도의 비경은 실로 일품이었다. 마치 풍광이 그림 같고 드러내는 모습들은 이국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첫날부터 혹독한 신고식은 치르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타고오던 삼산호가 어찌나 거친 파도에 요동을 치든지 반 주검이 되고 말았었다. 손죽도와 초도사이는 예로부터 악명이 높아 극심한 삼각파도가 배전을 강타라도 하면 좌우상하로 흔들려서 생지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 바람에 승객들은 체면불고하고 서로 뒤엉켜 비명을 지르지 나뒹굴어 졌다. 그러니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거문도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느냐 싶게 바람은 잦아들고 파도는 잔잔했다. 다만 항내에 가득 찬 선박들만이 태풍의 전조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발이 묶인 배들은 서로 다닥다닥 붙어서 도선을 이용하지 않고도 이웃 섬을 건너뛰어 갈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거문도에 와서 진정으로 절경을 실감한 건 백도이다. 관광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에 나는 그곳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었다. 그 황홀한 아름다운 절경이라니... 그 감동은 이어지는 후반부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꼭꼭 싸매서 숨겨둔 섬백도는 범접하기 어려운 신이 노니는 섬.그 기기묘묘한 수직절리 타고 오를 자는진정 없으리. 한데 그때가 언제인가 . 내가 거문도에서 새 출발의 첫발을 내디 딘 지도 벌써 수 십 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모습도 많이 변했다.삼도로 나뉘어 있던 섬은 다리가 놓여 연결되었고, 옛 등대는 수명을 다하고 유물로 남겨졌다. 그리고 백도에는 찾아오는 관람객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나는 거문도를 떠올리면 조금은 아쉬움이 있다. 도로를 낸답시고 옛 소롯길을 훼손하고 말았는데, 그 바람에 옛길이 사라져 버려서다. 예전의 그 길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덕촌에서 변촌을 지나 서도로 이어지는 그 아름다운 벼룻길은 너무나 아름다워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모르게 만들었다. 그 아름다운 숲길, 수줍게 피어난 동백꽃이 이마에 나직하게 닿던 정겨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안타까움에 오랜 세월 지났지만 '아, 옛날이여'하는 아쉬운 생각이 절로 난다.
-
여수시, 타 지역민 거문도 여객선비 50% 시범 지원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한 거문도를 반값 운임비로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여수시는 타 지역민을 대상으로 올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여수~거문항로(초도, 손죽도, 거문도) 여객선비를 50% 지원한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해상교통비 부담 경감을 통한 비수기 섬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마련됐다. 앞서 시는 추경예산을 통해 사업비 5000만 원을 확보했으며, 지원액 50%는 여수시가 40%, 여객선사가 10%를 부담한다. 시는 관광객 유입 효과 등 전반적인 추이 변화를 살펴보고 사업 확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옹진군의 경우 타지역민 여객선비 지원을 통해 10.5%의 관광객 유입 효과가 나타났다”면서 “이번 사업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사업 홍보와 손님맞이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 거문도 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