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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따라잡기 >>>난중일기에 나오…

여수 석보는 평지에 축조된 방형의 성곽시설... 해안지역의 관방 유적으로 이순신 관련 관광자원 활용도 높다...

유적따라잡기 >>>난중일기에 나오는 여수석보-사적 제523호(하)

-여수 석보는 평지에 축조된 방형의 성곽시설...-해안지역의 관방 유적으로 이순신 관련 관광자원 활용도 높다... 난중일기 중에서... 임진 4월 18일(정미) 아침에 흐림(저녁에 순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병방이 석보창에 군사를 인솔하고 오지 않으므로 붙잡아 가두었다). 壬辰 四月 十八日 丁未 朝陰 (夕 順天領軍兵房 留在石堡倉 不爲領付 故捉致因禁 ) 병신10월 5일(무진) 흐림(남양 아저씨가 집안에 제사가 있어서 일찍 부르기에 다녀왔다. 남해현령(박대남)과 함께 이야기 했다. 비 올 징후가 많다. 순천부사(배응경)은 석보창에서 잤다). 丙申 十月 五日 戊辰 陰 ( 南陽叔主大祭早招 故往來 與南海話 多有雨徵 順天宿石堡倉 ) 고지도에 나오는 여수석보 여수석보는 당시 널리 축조되었던 산지나 평산지역에 마련한 성곽과 달리 평지에 마련된 방형의 소규모형태의 석보로 출발하였다. 남벽은 178m, 서벽은 171m, 북벽 186m, 동벽은 168m 내외로 성벽 전체 둘레가 703m 내외이다. 남벽은 남벽중앙의 추정 문지를 중심으로 동서방형으로 일직선으로 축조된 성벽으로 남문지의 동측 약15m 지점에 치(雉)또는 적대(敵臺)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고, 이런 치는 평지성에 있어서 각 방면에 성벽에 2~3개 정도는 마련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한 곳만 보이고 있으며, 성벽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다른 방향의 성벽보다 양호한 편이다. 동벽은 남북방향에서 약10°정도 동남쪽으로 기울어진 직선형의 성벽으로, 현재는 성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동벽의 바깥쪽에 마련된 대로를 따라 동문 쪽으로 접근하게 되어 있다. 석보가 활용되고 있었던 시기에도 동문의 활용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동벽은 비교적 유구가 상대적으로 잘 남아 있고, 동벽중앙에 동문지가 마련되어 있지만, 동벽 북쪽지역은 민가가 있었던 곳으로 성벽의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북벽은 다른 성벽에 비해 다소 길다. 북벽외부는 성벽가까이까지 농으로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벽의 지대석(地臺石)까지 노출되는 등 성벽의 보존상태가 좋지 않다. 서벽은 다른 방향의 성벽보다 보존상태가 상대적으로 나쁜 상태이며, 성벽의 중심지에 추정되는 서문지의 위치도 정확하지 않은 곳이다. 서벽의 남쪽구간은 그간 과수원으로, 북쪽은 논으로 이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성벽가까이로 관개수로가 있고, 서남쪽의 성벽유구는 성벽의 뒤채움 돌만 남아 있는 정도로 훼손정도가 심한 편이다. 여수석보의 성문은 남문지와 동문지 등이 확인되었으니, 서문지로 추정되는 곳에 대한 정확한 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수석보는 소규모의 석보로 출발한 성곽이기 때문에 성문을 각 방향마다 모두 두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 지고 있으며, 북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남문지는 남벽중심지역에 마련되어 있는데, 폭4.7m 길이 8.7m 내외로 문루(門扉)는 성벽외부에서 안쪽으로 약 1.5m지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로에는 온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문지도리석이 보이고, 박석(薄石)이 노출되어 있어 이곳에 마련된 문루는 초석을 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누문식(樓門式)형식으로 추정된다. 동문지는 동벽의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20m 북쪽에 위치하나 명확한 문지유구가 노출된 것은 아니지만 폭4.7m 통로 폭 7.7m로 남문과 비슷한 규모로 추정된다. 문지에는 문지도리석이 보이고 내부에는 통로를 구성하는 측벽의 성돌이 보이고, 이곳의 문루도 남문지와 같은 형태의 문루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수석보 내 성내시설에는 주로 건물지, 주거지, 연지 및 우물지 등이 조사 발굴되었다. 건물지에는 활용목적에 따라 관아 건물을 비롯한 다양한 건물과 창성(倉城)으로서 가장 상징적인 대규모의 창고(倉庫)건물지 등이 있었다고 보여 진다. 현재까지 성내 여러 곳의 건물지가 확인되고 있으나, 그간 성내에는 지반 교란이 심하여 제대로 원상이 보이는 건물유구는 적은 편이다. 가장 남쪽에서 확인된 건물지는 초석지의 위치에서 건물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성내 중심부에서 약간 동쪽에 위치한 곳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거주지가 26기 정도 확인되고 있다. 조선시대 석보 이전부터 생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으나, 한 곳의 주거지를 시대적으로 계속 이용함으로써 건물유구나 유적이 혼재함을 알 수 있다. 성곽에서 필수적인 시설의 하나가 연지를 비롯한 취수시설이다. 여수석보에는 성내에 우물이 3개소 있다고 한다. 우물지는 성의 중심에서 남서쪽 36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면상 원형으로 보이나 자세히 보면 육각에 가까운 형태이다. 내경이 1.6m이고, 외경이2.7m 내외, 우물깊이는 2.1m로, 우물을 조성하기 위해 사용된 석재는 30~40cm 정도의 할석을 사용하고 있다. 연지는 성의 서쪽중앙에서 남북으로 길게 조성된 연지유구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모를 둥글게 한 사다리꼴에 가까운 형태로 길이 20.6m, 폭9.5m,길이 0.9~1.4m 내외로 호안을 전부 석축으로 하지 않고, 상부의 태두리만 석축한 형식을 띠고 있다. 여수 석보 남문지/적대/해자/남쪽 성벽 등 여수석보 성외의 대표적인 시설은 해자이다. 여수석보는 평지성이기 때문에 해자의 필요성은 다른 성들에 비해 필요성이 큰 편이었다. 여수석보의 해자는 성벽에서 약 5.5m내외의 거리에 폭은 4.5~5.0m, 깊이는 1.0~1.4m내외의 석축으로 조성된 형식으로, 성의 와벽을 따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깥에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동문지로 통하는 외부의 해자가 진입도로로 인하여 절단되어 있었고, 동문지 앞에는 해자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수 석보는 조선 시대(15세기 중반) 널리 활용되었던 산지나 평산 지역이 아닌 평지에 축조된 방형의 성곽시설인데, 3차례의 발굴조사와 학술대회 등을 통하여 유적의 성격을 확인하였다. 여수 석보는 처음에는 군사적인 방어위주의 석보(돌로 쌓은 성)에서 출발하여 점차 관청용 물자비축의 창고와 장시(시장) 기능으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주목되는 유적이다. 또한 체성부(성벽의 몸체 부분)와 해자(성 주위에 둘러 판 못)의 잔존상태가 양호하다. 15세기 중반 평지부에 방형으로 축조된 육군 진보(각 지방을 지키던 군사조직이 주둔하던 소규모의 성)로서 전 구간에 걸쳐 첫째 단을 세워쌓기한 점, 대형의 지대석을 사용한 점 등은 다른 성곽에서는 찾기 힘든 시대적인 한정성·희소성을 지닌 귀중한 유적이다. 여수 석보는 조선시대 성곽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여수 석보의 성벽은 외벽 바깥쪽 1m 범위에서부터 내측의 약 4.15m~4.5m까지 약 5~5.5m 구간의 지면에 20cm 내외의 쪼갠 돌을 거칠게 다듬은 할석재와 판석재를 깔았다. 성벽 등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터에 쌓은 돌인 지대석을 놓은 후 외벽을 돌로 쌓고 그 뒷면을 잡석과 자갈 등으로 채우는 뒤채움을 한 후 성벽의 윗부분과 성벽 안쪽으로 흙을 경사지게 덮어 마무리한 내탁법으로 축조하였다. 지대석 위에 20~30cm 가량 뒤로 물려 1~2.6m 정도의 대형 할석으로 전 구간에 걸쳐 첫째 단의 성돌을 세워서 쌓는 특징을 보여 준다. 2단부터는 상부로 갈수록 작은 성돌을 사용하여 쌓은 조선시대의 성곽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으나 전 구간에 걸쳐 첫째 단의 성돌을 세워쌓기한 점은 다른 성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적인 양상이다. 특히 성곽의 네모서리의 각을 죽여 둥글게 처리한 점에서 다른 성곽과 차별성을 보이는 성이다. 여수 석보는 전라도 육군이 외적 방어의 임무를 맡아 보는 대표적인 요충지에 축조된 관방시설로서 기능하기 시작하여 세금을 수납하여 보관하던 창성 및 장시 등의 사회·경제적인 기능으로의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변화모습을 잘 살필 수 있는 유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 복합유적이다. 여수 석보는 해안 지역의 관방시설을 비교 분석 할 수 있는 유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남해안과 순천 등 내륙 지역을 연결하는 여러 교통로가 교차하는 결절점에 위치하여 군사·교통의 요충지로서 역할을 하였고. 시공간적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던 조선시대의 창성과 장시 등을 연구할 수 유적공간이다. 현재 여수국가산단의 진입로에 위치하여 과거의 교통로의 결절점임을 입증하고 있다. 인근의 여수 흥국사와 묘도 및 전라좌수영의 유물·유적과 연계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유적이다. 또한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여수 석보(석보창)를 활용하여 여수지역에 산재해 있는 이순신 관련 유물·유적과 연계하여 ‘호국충절의 도시 여수’임을 재삼 강조할 수 있다. 여수 석보 동문지내 비석 동문지 내에 비석이 2기가 있다. 모두 전·후면이 마모되어 있지만, ‘水軍節度使李公寅熙永世不忘碑’·‘水軍節度使金公魯甲恤民善政碑’라 음각되어 있다 전해진다. 여수 석보의 복원을 통하여 주변 경관을 정비하고, 여수 석보촌 민속마을 조성하여 창성과 장시의 옛 모습 등을 재현한다면 여수 석보가 가지고 있는 복합유적으로써의 진면목을 보여 줄 수 있다. -민대기 문화재학박사-

신병은의 문화칼럼

양해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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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미학을 조형으로 풀다’ 예울마루 상반기 기획전 양해웅 초대전 진행삶의 현장을 거창하게 해석하고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처에 서성이는 상처받고 허물어진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 ------------------------------------------------------------------ 그는 화가이면서 과학자가 된다투박하면서도 자연의 섬세함이 담겨있는 작품직선과 곡선, 선과 면, 평면과 공간, 상이한온갖 오브제 생명 향한 일원적 세계로 어울려 지금 예울마루에서는 올 상반기 기획전으로 양해웅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화화와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양해웅작가는 이러한 조형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점에서 일어나는 진동에서 시작되어 경계가 허물어진 놀이에서 끝이 난다. 그 놀이는 유희본능에서 비롯된 예술혼의 추임새다. 기존의 캔버스가 지닌 관습을 과감히 탈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그의 작품을 표현하는 용어가 그동안 화단에서 입체회화나 부조회화라 불리던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평면과 입체, 원근과 색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작업을 하면서, 대상을 기호학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추상작업를 시작했고, 다양한 오브제를 통합하는 입체회화에 심취하게 된다. 추상은 곧 단순화이고 마음으로 본 생명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데는 추상작업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시류에 쉽게 편승하지 않고 한 결 같이 눈 깊은 성찰로 삶을 진단하고 해석하여 개성적인 조형미로 새로운 공감과 인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양해웅은 우리 삶의 현장을 거창하게 해석하고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처에 서성이는 상처받고 허물어진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기존의 조형적 관습을 과감히 벗어버린 작업을 한다. 그의 조형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넘나들며 연출하는 통섭의 요리다.그가 입체적 금속캔버스와 목재 등에 기하학적인 직선과 곡선의 조형성을 통해 생명의 원형을 캐려하는 이유도, 자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재료와 색감으로 균형있는 공간적 조형을 추상적으로 다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미적으로 규명해 내기 위해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현상을 직시하면서 발견과 적용, 현상과 초월을 넘나들며 직관의 통찰로 가는 그만의 조형어법이다. 곡선이 순환적인 생명과 생성의 모습이라면 직선은 소멸을 의미한다. 자연적인 생명의 본성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직선은 인간의 인위적인 힘이 가해진 일그러진 생명을 의미하게 된다. 이제 양해웅은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용을 꾀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직선적 시간과 사고의 패러다임에 대해 반성하면서 곡선이 지닌 생명의 운동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현상을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안겨있는 생명현상의 원형을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다.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넘나들며 만나는 통섭의 미학이다.그가 다도해의 섬과 바다, 그리고 해와 달에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아울러 그의 작품 무인도, 섬마다 뜨는 해, 지는 달 뜨는 해, 하늘 강을 흐르는 잠들지 않은 숲, 시간의 유적, 위험한 여정, 생명의 바다 등 공간성과 시간성에 대한 내포적 의미체험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포즈가 곧 생각이고 공간이 곧 생각이다.그러기에 그를 일컬어 평면적 회화와 입체적 조형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전위적 작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초기에 기하학적 추상화를 중심으로 평면작업에 몰두하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선상에서 느껴오던 평면의 한계성을 과감히 탈피하기 위해 94년부터 나무와 금속조형의 새로운 미를 추구하게 된다. 자유분망한 상상력으로 생명을 통찰하고 보듬어내는 그의 작업은 생명의 원형을 깊이와 넓이로 만나기 위한 방법적 모색이자 꼴라쥬다. 철, 스텐레스 스틸, 알루미늄, 나무, 합판, 자동차 부품, 기계 부품 등 우리의 삶과 밀접해 있는 오브제를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생을 기다리는 것들에 대한 관심도 복원과 새로운 질서 확립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배어있다.이처럼 그의 발견과 적용은 자연과 인간의 경계선상에서 만나는 진동에서 출발한다. 자연주의자는 자신의 감성으로 여과한 자연 속의 동경과 꿈을 표현한다면, 자연의 안쪽을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발상법을 형상화하는 그 또한 자연주의자로 보는 것은 무방할 것이다. 다만 그의 자연관은 ‘천지天地의 기氣가 내 몸을 이루었으니 내가 천지天地의 본체本體이며 천지天地의 이理가 내 마음이 되었으니 내가 바로 천지天地의 성性“이라고 한 퇴계退溪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규명하려 한다. 그의 발상법은 시적 유추와 추상, 패턴인식에 의존하여 진행된다. 양해웅은 삶과 생명의 원형을 자연의 순환을 따라 바라보되 그 순환의 결마다 저며 있는 원형적 생명성을 기호학적 의미로 해석해 내어 이를 역동적으로 보이면서 그 원형으로 귀환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의 이면에는 훼손되지 않은 본래적인 생명을 향한 지문指文이 깔려있다. 이러한 지문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원형적 생명을 복원하고, 자연과 인간의 친화적인 삶을 꿈꾸면서, 중대하고 놀라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추상작업에 기대기도 한다. 자연이란 스스로의 이치와 스스로의 시공 속에서 무한한 크기를 지닌 절대세계다. 이러한 절대세계인 자연에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는 얼마나 될까?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연적이고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추상적인 작품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좀 더 사유하고 좀 더 자유스러운 공감대를 이루어 나의 제작 의도를 유연하게 전달하고자 함이다. 이것이 나의 노정에 대한 확신이고 또 하나의 자연을 만들어 가는 열려있는 길임을 잘 알고 있다. - 양해웅의 작업 노트에서- 그는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된다.그의 자연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자연이 되는 선순환이 닿은 곳이 바로 추상이다. 세계의 이면에 담겨있는 생성과 소멸의 선순환을 통찰함으로써 존재의 근원과 본성에 근접해 가려는 화가의 조형적 모색은 결국 통섭의 자연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얼핏 거창한 말 같지만 그것은 온생명으로서의 자연을 펼쳐두고 그 위에 낱생명인 인간을 어떻게 기대어 둘 것인가를 고민하는 조형적 모색이다.인간이 자연이 될 수 있는 길은 자연의 원형으로 귀환하는 일이다. 자연의 작은 한 부분으로서 완전히 동화됨으로써 일탈된 모든 영혼과 꿈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그는 일찍이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자연의 원형을 탐색하는 작업임을 헤아렸다. 자연과 인간, 우주의 근본 질서 회복을 역사성과 공간성을 함께 모색하면서, 재현과 실체사이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상적 오브제를 조형적으로 재생시켜보려는 의도가 여기서 확인된다. 그의 작품 속에는 투박하면서도 자연의 섬세함이 담겨있고, 직선과 곡선, 선과 면, 평면과 공간, 상이한 온갖 오브제가 생명을 향한 일원적 세계로 서로 어울려 서정추상의 조형을 이루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양해웅은 제 깊은 곳에 응시하면서 좀 더 깊숙하게 스스로를 향해 달려가는 그리움의 작가다. 그는 상처 난 인간의식을 어루만지면서 상처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고, 훼손된 자연에서 훼손된 인간의 본성을 만나고, 이를 조형탐색으로 걸러내어 치유하는 길을 제공한다. 그러기에 그가 늘 위치하는 곳은 어둠이다. 밤하늘이거나 장마진 곳, 그리고 사람의 자취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인도다. 처음의 모습을 보기 위해 어둠 속에 앉아 해와 달고 별을 바라보는 것이다.루카치는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답답해도 우리가 나아갈 길이 되는 한 올 빛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삶이라고 했다. 이 점에서 양해웅의 삶의 인식은 어둔 곳에 있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항상 밝은 곳을 향해 있기에 건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본래적인 처음을 바라보려는 안목으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생명력을 담보하는 작업을 한다. 그의 작업을 들여다보면 그가 나중에 정착할 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다. 탄생과 존재, 삶과 소멸, 해체와 생성의 양면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본래적인 생명을 향한 미학적 접근으로 훼손된 생명의 부활을 꿈꾸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그의 회화적 오브제와 미감의 원리, 공간과 평면의 미적인 질서 확립을 보면 그가 작업의 중심에 놓아두려는 상징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빛과 바람의 순환이 있는가하면 인간과 자연의 어울림이 있고, 탄생의 울림이 있는가 하면 소멸의 아픈 몸짓이 보이고, 훼손된 생명의 현장이 보이는가 하면 상생과 공생의 생존이 보인다.그러므로 그의 작품 만들기는 잃어버린 존재의 원형 찾기와 새로운 생명미감 준비에서 시작된다.원시적 생명이 갖는 경외와 장중함이 드러나는가 하면,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숨결과 신비로움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중고차 거래의 멘토’…“믿음과 …

새 차와 거의 같은 품질

‘중고차 거래의 멘토’…“믿음과 신뢰를 팝니다”

지난해 중고차 시장의 거래액이 30조를 넘어섰다. 중고차 거래대수가 화물 특수차를 포함해 평균 366만대로, 이는 신차 169만대의 2배 수준이다.이런 치열한 중고차 시장에서 오늘도 지역경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자동차 시장의 멘토가 있다.여수시자동차매매협의회의 문경일 보성자동차 대표도 그 중 하나다.문경일 대표는 “과거 부와 명예의 상징이던 자동차는 성공의 아이콘이었지만 현재의 소비자들은 가성비를 따져 가치 있는 선택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면서 “소비자들은 새 차와 거의 같은 품질과 믿을 수 있는 중고거래가 된다면 가치 있는 선택을 하게 된다”며 중고차 거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이런 그가 지역내에서 꾸준한 봉사활동까지 펼치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문 대표는 사단법인 모두모아봉사대봉사 등 여러 봉사단체에 소속돼 남다른 봉사활동으로 지역민들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다음은 문경일 보성자동차 대표의 일문일답이다. -중고차 하면 말 그대로 누군가 쓰던 차라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믿음이 가지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이렇게 중고차 시장이 활성화된 바탕이 무엇일까요? △자동차가 과거에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습니다. 자동차는 성공의 아이콘이었지요. 지금도 성공하면 보다 더 좋은 자동차를 타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현재의 소비자들은 가성비를 따진다는 겁니다. 합리적인 소비를 원하는 가치소비의 시대가 왔다는 겁니다. 소비자들은 새 차와 거의 같은 품질과 믿을 수 있는 중고거래가 된다면 가치 있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소비자가 휘둘리지 않고 본인의 판단으로 소비방식을 선택한다는 말씀이신데요. 신뢰의 중고거래란 어떤 것인가요? △중고차 시장이 투명해진 것이죠. 과거 중고차 시장은 사고차인지 주행거리의 조작 등 명확한 정보가 불투명했던 어두운 흑역사를 가지고 있었기에 불신이 깊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품질보증인증, 성능점검부 첨부, 중고차거래 실명제 등 불공정했던 과거의 시장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선택을 하는 거지요. -새 차와 거의 같은 중고차라고도 하셨는데요 △요즘 자동차는 쉽게 고장이 나는 물건이 아닙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죠. 출시 때 성능에 문제가 있었으면 언제든지 리콜해주는 제도가 있고 이것은 중고를 샀을 때도 적용이 이어지고 있잖아요. 1~3년쯤 된 중고차는 거의 새 차나 다름없이 깨끗하고 치명적일 정도의 고장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때가 되면 교체해야하는 소모품 교체가 있을 뿐이지요. -그럼 5년 이상 10년 이상이 된 오래된 중고차일 경우, 문경일 대표께서는 어떻게 신뢰를 주셨을까요?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서비스 A/S가 우선이겠지요.중고차의 양면성이 있겠지만 대다수의 중고차 딜러들은 성심성의껏, 특히 지역사회에서는 더 철저한 AS를 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한 달 2000㎞ 엔진 미션 보증법위로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문제가 있다면 3개월에서 5개월까지도 AS를 해드립니다. 지역사회잖아요. 최대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공유차의 중고매매 현황은 어떤가요? △중고차 시장에서도 친환경차 거래가 최ㅏ근 3년 사이 80%가량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6년 175대에 불과 했던 전기차가 지난해 1009대를 기록하였으니 6배로 급격하게 늘어난 거죠. 친환경 중고차 거래는 국산차와 수입차 모두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5개월까지도 관리를 해주신다는 말씀에서 문경일 대표님의 여수 중고시장 10년 동안의 성공 비결이 느껴집니다. 봉사활동도 굉장히 활발하게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사회환원이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한가요?저는 대기업도 아니고 지역의 작은 중고매매상을 운영하지만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봉사와 나눔이 따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이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좋은 분들이 제 곁에 많이 계십니다. 그 분들과 함께 저도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활동하시는 단체는 어떤 곳인가요? △네. 저의 작은 재능과 미약한 기부가 도움이 된다면 많은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사)신해양 발전협의회, 사)ECO-PLUS21, 사)모두모아봉사대, 여수경찰서시민명예경찰, 여수경찰서중앙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 등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비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중고차 잘사는 법 무엇일까요? △싸고 좋은 차는 없습니다. 터무니없이 싸다면 의심스러운 허위매물일 가능성이 많으니 조심하세요. 제값주고 사고 제값주고 팔면 제일 좋은 중고거래가 되겠지요. 가장 기본은 국가에 정식으로 등록된 중고차 매매 전문업체를 통해 구입하는게 기본입니다. 개인 간의 거래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들이 있지요. 성능기록부나 차량등록증, 보험조회, 압류나 저당조회, 등을 전문매장에서 여러 가지 확인하셔야 합니다.나의 생명과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타는 차를 그냥 싸다고 확인도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詩 읽어주는 남자

별 하나 잽싸게 달려들어 꽃이 된다

詩 읽어주는 남자

우동식의 詩 읽어주는 남자 ----- 매화 이성배 막, 진통이 시작 되었다 난산이다 마르고 굽은 가지까지 힘을 쓰기에는 묵은 세월이 너무 무겁다 지켜보고 있던 달빛 입술이 바짝 마르고 산파로 나선 바람 제가 더 용을 쓰고 있다 누구나 가슴에 꽃망울 하나 씩 배고 있다 그것이 꿈이던 추억이든 또는 그리움이든 만삭의 겨울 무거운 걸음으로 강을 건너고 기다림은 언제나 아픔이다 마지막 힘으로 비늘잎 찢고 불두덩이 쑤욱 돋으면 숨 죽이고 있던 별 하나 잽싸게 달려들어 꽃이 된다 우동식시인 매화는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피어서 동매(冬梅), 눈 속에 피기에 설중매(雪中梅)라 하고, 꽃의 빛깔에 따라 하얀 것을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 부르며, 꽃에 중점을 두면 매화가 되지만 열매에 중점을 두면 매실이 되는 유실수(有實樹)이다. 지리산 자락 산청군 단속사에 가면 강회백이 심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정당매(政堂梅)와 함께 그 부근에서 남명매(南冥梅)와 원정매(元正梅)등 산청삼매를 만날 수 있다. 몇 해 전 여수갈무리문학회 회원들과 문학기행을 갔을 때 640여년이 된 정당매가 고사 된 곁가지에서 핀 매화를 보면서 고매하고 은은한 향기에 압도 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성배시인은 그것을 진통 끝에 난산이라 했다. 우주의 집중으로 잉태 한 꽃의 탄생은 신비하고 위대하다. 어디에 품었다가 저 많은 꽃들을 피워낼까? 먼 길 걸어왔을 저 많은 꽃등, ‘마지막 힘으로 비늘잎 찢고 불두덩이 쑤욱 돋으면 숨죽이고 있던 별 하나 잽싸게 달려들어 꽃이 된다. 가장 먼저 남쪽에서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추위에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매화를 선비들은 매경한고불매향(梅經寒苦不賣香 )‘매화는 추위와 고통을 겪어도 향기는 팔지 않는다’하여 사군자의 으뜸으로 여겼다. 매화정신, 매혼(梅魂)을 매군(梅君)이라 하여 자네 또는 군자로 사랑했던 것이다. 중국 송나라 임포는 절강의 소호에서 처자식 없이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에게 매화는 아내요 학은 자식 이었다. 그래서 풍류를 즐기는 이러한 삶을 매처학자(梅妻鶴子)라 했다. 막 매화꽃소식 매신(梅信)이 전해져 오고 있다. 하얗게 꽃 핀 매화나무 터널 아래서 달빛과 함께 그윽한 매화주 한잔 하고 싶다. 그러면 내 가슴에도 매화꽃 피려나 ‘누구나 가슴에 꽃망울 하나씩 배고 산다. 그리고 만삭의 겨울 무거운 걸음으로 강을 건너’고 반짝이는 꽃이 되고자 한다. 향기가 되고자 한다. 열매가 되고자한다. 스스로 빛나고 스스로 아름다워지고자 한다. 우동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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