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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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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김성은

비우면 또 채워진다. 기부! 즐기면 된다

<초대석>-김성은

비우면 또 채워진다. 기부! 즐기면 된다 나눌수록 건강한 세상이 된다고 믿는 사람, 나 같은 사람의 손길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사람, 따뜻한 너털웃음을 훌훌 던지는 사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어 울퉁불퉁 재밌다는 사람, 다음은 ㈜미주기업 김성은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봉사와 나눔도 보다 효율적으로 하는 세상입니다. 김성은 대표는 어떤 스타일인가요? 저는 그냥 닥치는 대로 합니다. 무대포식이라고 할까요? 젊은 시절 무작정 돈만 벌었어요. 다행히 운이 좋아 성공이라는 단어를 써도 좋을 만큼 사업이 안정되었을 때 돌아보니,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렸을까 그때서야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봉사나 나눔을 체계적으로 생각하지 못했고 그냥 필요하다는 곳이 있으면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봉사와 나눔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 동네 친구인 김영주회장(재능기부봉사단체회장)의 권유에서 시작했어요. 할아버지부터 친구니까 저와 친구는 3대째 친구입니다. 참 오랜 친구죠.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저는 그 친구를 따라 2013년부터 봉사와 나눔이라는 세상에 첫발을 딛었어요. 처음에는 그 친구가 캄보디아에 물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우물 파러 간다고 하기에 혹시 나도 도움을 줘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사업이 바빠서 함께 가는 못해 아쉬웠지만 간간히 우물 파는 비용을 기부했습니다. -무대포식 스타일 이라고 하셨는데요,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곳은 없으신가요? 여수라이온스와 사)모두모아봉사대, 사)ECO-PLUS21에서 활동하고 있고 초록우산 후원사로 기부를 꾸준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업한다고 바빠서 봉사는 자주 나가지 못하고 있어서 온 몸으로 땀 흘리며 봉사하는 회원들에게 미안합니다. 사실 기부를 하는 편이 훨씬 간편합니다. 제가 제 맘 편하자고 남들보다 서둘러 기부하는 겁니다. -봉사와 나눔이 모두의미가 있겠지만 그래도 유난히 가슴에 남는 기부는 어떤 것인가요? 동서화합천사프로젝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하는 겁니다.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나눔과 봉사를 하는 건데 특히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의 화합을 위한 영남과호남의 화합의 장입니다. 저소득층의 안정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건데 제가 운영하는 미주기업이 후원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기부를 하여 아이들의 꿈과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을 돕는 일이라면 누구라도 앞장서야 할텐데 그런 분들이 계셔서 저는 그냥 한 발짝씩 따라가고 있습니다. -주식회사 미주기업이 초록우산 후원사로군요. 미주기업은 어떤 일을 하는 기업인가요? 주)미주기업은 2010년 12월에 창립되었습니다. 여천산단내에 건축자재임대업과 플랜트 공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계열회사로는 주) 다온 ENG가 있습니다. 이 두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업도 아주 정신없이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하면 크든 작든 열매가 열리더라고요. 그 열매 수확 중 아주 조금을 나누고 그 나눔을 할 수 있어 기쁩니다. -여수일보 시민기자활동도 하시잖아요? 네. 여수일보 시민기자 2기 때 신청했다가 수업일수 부족으로 수료를 못했고 올해 4월에 다시 3기 신청을 했고 겨우 수료해서 시민기자증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실 글솜씨가 없고 시민의식도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깨어있는 눈을 갖게 해 준다’는 시민기자 슬로건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사는 것이 많잖아요?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반듯이 제 이름 석자로 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우리 지역 소외된 곳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봉사와 나눔은 무대포식 스타일로 가나요? 기부를 많이 하시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간혹 내가 기부한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하거나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부를 망설이게 되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주위에는 봉사와 나눔을 효과적이고 참다운 곳에 나누는 전문적인 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3대째 친구 김영주 회장도 있고요. 이런 사람들이 플랜을 잘 짜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저는 열심히 사업에 몰두하다가 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하면 두 말 없이 기부를 합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외된 곳이 많아요. 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는 우리 모두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기부를 하며 느끼는 뿌듯함으로 며칠을 잘 삽니다. 어떻게 기부할까 고민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지인이 있으니 얼마나 홀가분하고 쉽습니까? 비우면 또 채워지니까 즐거운 기부가 됩니다. 나눔에 동참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이제 즐기면 됩니다. 최향란기자

초대석- 최상철 대한적십자사 봉사…

우리 사회 관심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바친, 직업이 봉사인 사람

초대석- 최상철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광주.전남 협의회장

우리 사회 관심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바친, 직업이 봉사인 사람 최상철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광주.전남 협의회장 말이 아닌 행동으로 봉사하는 사람은 얼굴이 환하고 선한 기운이 나온다.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나눔을 실천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직업을 봉사라고 생각하고 22년을 봉사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다음은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광주.전남 협의회 최상철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대한적십자사 봉사회에서 어떤 봉사를 하시나요? 저는 대한적십자사에서 올해로 22년째 봉사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 적집자사는 전시에는 국군의 의료보조기관으로 부상자에 대한 구휼사업을 기본임무로 하고, 평상시에는 각종 구호, 봉사, 인간보호, 건강증진활동, 친선협력, 보건,혈액사업, 이산가족 상봉과 재결합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재난재해 사고 시에도 봉사를 하시는 거지요? 강원도 화재 때는 광주 전남팀 적집사회에서 봉사를 다녀왔고요온 국민이 함께 아파했던 세월호 사고 때는 저희 여수협의회에서도 같이 가서 봉사와 위로를 하고 왔습니다.2017년 여수교동에 위치한 수산시장 화재가 있었잖아요. 120개 점포 중에 116개 점포가 전소되는 큰 화재였는데요, 피해를 입어 힘든 상인들을 위해 13일 동안 세끼 식사를 준비해드리는 봉사를 했었습니다. -여수지구회장 6년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는 어떤 것인가요? 라오스 해외봉사를 3회 다녀온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라오스에 있는 학교에 교실 지어주고, 컴퓨터도 설치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어려운 사람이 있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최소한 밥을 굶는 일은 없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라오스는 아직도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제가 65년생인데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교실바닥이 맨땅이지는 않았어요. 나무 바닥이었지요. 제가 다녀온 라오스 초등학교는 교실바닥이 그냥 흙바닥 진흙탕입니다. 저의 유년도 힘들고 가난했는데 그래도 맨발로 다니지는 않았거든요. 그 아이들이 맨발로 다니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봉사의 길은 어떻게 접하게 되셨나요?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를 중학교만 다니고 고등학교 진학을 못했습니다. 중학교3학년 때 기술선생님께서 고등학교 진학할 형편이 안 된다는 걸 아시고 밥 벌어 먹고 살라고 전기기술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 기술선생님 성함은 기억나지 않지만 별명이 피카소선생님이셨어요. 그 피카소 선생님께서 저와 같은 가정형편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 전기기술을 가르쳐주시는 것도 봉사였지요. 가정형편 어렵다고 혹시 나쁜 길로 빠질까봐 사랑과 나눔을 주신거지요. 그 때 봉사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중학교 졸업하고 피카소선생님의 전기기술 덕분에 취직하여 열심히 살았고 성인이 되어 고등학교도 다시 다녔습니다.봉사의 길은 25년 전 의용소방대를 선배의 권유로 들어가서 저도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시작했습니다. -봉사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도 하는데요 봉사를 시간 날 때 한다는 사람은 절대 봉사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봉사접수가 필요하거나 봉사사진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가 제 직업을 물으면 봉사가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처음 봉사를 시작했을 때는 봉사 하는 게 큰 자랑도 아니다 싶어 주위에 알리지도 않았고 먹고살기도 힘든데 봉사하고 다닌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봉사활동을 몰래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온 동네 알리려고 합니다. 봉사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계몽하고 그 때 그 때 시간을 조금씩 배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최상철 회장님께서는 좋은 마음 정의로운 마음으로 묵묵히 봉사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주변에서 오해의 말씀도 들으셨다고요? 저에게 정치하려고 봉사를 온가족이 하는 거 아니냐는 말씀을 많이 하였습니다. 저는 늘 한결같이 말합니다. 진정을 가지고 마음으로 우러나서 봉사를 하는 거지 정치에 뜻은 전혀 없습니다. 정치는 정치에 뜻이 있고 정치를 잘하는 분들이 하시면 되고 저는 봉사가 직업이니 앞으로도 봉사에만 전념할 것입니다. 아들은 4살부터 저를 따라 섬봉사를 다녔고 지금은 여수지구협회 E세대 봉사회 회장(최정욱)으로 봉사하고 있고 딸(최은정)은 성인이 된 후부터 봉사회에 들어왔습니다. 아내 우양희씨는 가족들이 열심히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사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우양희 여사님께서는 어떤 사업으로 봉사지원 및 가족 생계를 이끌고 계시나요? LG선물셋트. CJ특판. 애경특판. 화장품 특판. 네슬러. 무궁화대리점 등 선물셋트 전문 상호유통을 하고 있습니다. 야유회, 체육대회, 행사선물셋트와 기념타월, 츄리닝 등 기타 특판전문점을 하는데 제가 봉사한다고 자리를 많이 비우기 때문에 혼자 고생이 많습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제가 받은 많은 상은 모두 아내 우양희 여사의 내조 덕분이라고 늘 자랑합니다. -섬봉사도 많이 다녔다고 하셨는데 훈훈한 미담도 많을 것 같아요 대두라도 섬봉사 1박2일 갔을 때 보통 마을 회관이나 노인당에서 1박을 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는 어느 어르신 댁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님이 오랜만에 만난 아들같은 저희들에게 새벽 2시가 넘도록 당신이 살아온 세월과 자식자랑 등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저희도 말벗이 그리운 어머님께 네, 네 하면서 장단을 맞추고 듣다가 꾸뻑꾸뻑 졸기도 하였는데 새벽 2시가 넘자 도저히 못버티고 앉은채로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어머님께서 아침 일찍 아침밥을 차려주셨어요. 김치와 된장국이었는데 참으로 맛있게 감사히 먹고 돌아오는데 눈물을 흐리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짠합니다. 말씀으로는 자식자랑을 하셨지만 명절 때도 찾아오지 않는 아들을 밤새 자랑하셨던 것이지요. - 앞으로 광주.전남 협의회 회장으로 어떤 계획이 있을까요? 라오스 해외봉사를 계속 지속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저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 다니기 어려웠던 유년이 있었기에 학교봉사에 특별한 애착이 있습니다. 칠판도 만들어주고 아이들이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둘째로는 봉사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선배회원인 저희들이 진정성 있고 참다운 마음으로 봉사에 임하여 새로운 회원들을 올바른 봉사의 길로 함께 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봉사는 미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봉사에 미친 놈, 봉사가 직업인 한 사람으로 앞으로 많은 봉사자들과 좋은 길을 함께 하겠습니다. 최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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